테트리스

  무엇인가 모자란 점을 우연치 않은 기회에 발견하고, 어떻게 하면 모자라지 않을 수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본 다음에, 무엇인가를 하기로 결심을 한다. 그리고 일주일의 주어진 시간 중 언제쯤 결심한 일을 실행 할 수 있는지 정한다.

  몇 달인가 전에는 TOEFL 시험의 Speaking Section의 성적이 엉망인 것을 깨닫고는 영어로 말하기를 연습해야 할 것 같아서 토요일 오전을 영어회화 스터디라는 블럭으로 채워넣었다. 그 후에는 연구실에 들어와서 하루종일 앉아서 밥만 두끼 축내고 살만 찌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침 이른 시간과 토요일 이른 오후를 스포츠 센터에서 운동하는 것으로 채워 넣었다. (월수금은 수영이고 화목토는 웨이트와 조깅이다) 뒤쳐지지 않는 문화생활을 위해서 평일에 운좋게 생긴 공휴일의 아침에는 집근처의 영화관에서 조조영화를 관람하기로 하고, 최소 한달에 한번 정도는 예술의 전당에서 저녁 8시에 시작하는 클래식 콘서트 공연을 보기로 정했다. 친구들도 서로 얼굴을 까먹지 않도록은 만나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 평일 중 하루, 또 주말 하루의 저녁때는 평소에 보기 힘든 친구를 만나는 시간으로 할애하기로 했다. 이렇게 살다보니 전공서적에만 파묻혔지 혼자 사색하면서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은 전혀 없어서 새로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자극이 되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모임을 토요일 늦은 오후에 하기로 정하고 참여토록 했다. 일요일의 오후에는 운전연습도 하고 못가본 동네의 지리도 익힐 겸 차를 몰고 돌아다니는 것으로 정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대부분 이런 식이다. 심지어 연애조차도.

  이러한 끝도없이 수많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고 하다보니 마치 테트리스 게임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구나 테트리스라는 게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주어지는 조그만 블럭들을 시간안에 최대한 빈공간이 없도록 아래쪽의 공간에다가 가지런히 쌓아가는 것. 주어지는, 나를 안달나게 하는 과업들은 시간이 갈수록 하나씩 쌓여만 가고, 나는 서둘러 한정된 시간 공간 안에 최대한 빈틈이 없이 메꾸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빈공간이 있으면 안되는 것 처럼 쓸데없는 시간의 낭비가 있으면 안된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테트리스는 하나의 완전무결한 라인이 있으면 그 공간은 사라지지만, 실제 자기의 삶을 하나하나 채워가다보면 꼭 완벽하게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한다고 해도 쉽게 무엇인가 성취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영어회화를 몇 주 성실하게 참여했다고 해서 네이티브 처럼 영어를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고, 운동을 몇 주 열심히 했다고 해서 평생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건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인생에서는 마음먹은 것은 무엇이는 금방 해 낼 수 있는 천재가 아닌이상에야 처리하는 블럭보다는 쌓이는 블럭들이 더 많아지기 마련이고 그러한 블럭들은 점점 위를 향해 한층한층 더 쌓이게 될 것이다.

  테트리스에서도 한정된 공간이 주어지고 그 공간을 넘어서면 Game Over 문구를 보게 되는 것 처럼 인생이라는 것도 한정된 시간이 주어지고 언젠가는 그 종착역에 다다르게 마련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쏟아지는 과제를 숙명적으로 다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것들은 도저히 없앨 수 없어서 평생을 끌어안고 가야하는 것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테트리스에서 시간에 쫓겨 레버를 아래로 내리거나 블럭을 한번에 아래로 곤두박질 시키는 버튼을 누르거나 하는 것과는 다르게 삶에서는 이 공간을 하나하나 정성껏 꼼꼼하게 메꾸는 여유를 가져도 별로 손해 볼 것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짜피 빠르게 쌓았다고 그 시간만큼 보상으로 되돌려 받지 못할 바에는 조금은 여유를 가져도 될 것 같이 보인다. 얼마나 많은 블럭을 쌓고 얼마나 많은 라인을 없앴는지로 평가받는 것이아니라 이 시간공간 안에 얼마나 많은 블럭들을 포용하고 있는지로 평가받는, 게임과는 조금 다른 인생이기 때문이다. 

  테트리스에서 느낀 인생은 그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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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살짝 픽션이네 -_- 아 갑자기 글이 복잡해져서 수정하기 귀찮다;

공부는 얼마나 해야 할까?

대학원에 입학하면, 공부 정도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이 책, 저 책 찾아본다거나, 혹은 논문을 뒤적뒤적 거린다던가 하는 끝없이 원하는 방향을 추구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좀 다르다. 아직 1학기라 그런지 몰라도 2과목을 듣는 수업의 강도가 학부때의 전공 12학점에 맞먹는 -_-; 세기이다. 읽고 읽어도 헷갈리고, 외우고 외워도 까먹는, 무한의 시간이 투입되어야 하는 블랙홀 같은 과목들은, 그야말로 상상하던 대학원 생활과는 조금 다른 경험을 하게 해주고 있다(!). 아, 도대체 공부를 얼마나 더 해야 하는 건가.

게다가 나는 다른 학부 출신이라 학부를 대표한다는 뭐랄까 사명감이랄것도 묘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대학원 학점은 중요하지 않아 적당히 하고 자기 원하는거 해” 라는 주위의 말과 “그래도 중간 이상은 가야 어디가서 손해보지 않지?”라는 마음속의 불안이 뒤죽박죽이 되어서 그 타협점을 찾기가 어렵다.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도 있고, 또 프로젝트도 신경써야 하고, 그 외 잡일도 여러가지. 정말로 관리! 관리!를 머리속에서 뱅뱅 맴돌게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런 생각이 처음은 아니다. 아주 오래된 기억을 천천히 살펴보면 도대체 공부는 얼마나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아마 내가 초등학교 2학년 이었을 때였는데, 흔히들 All 100 이라고 칭하는 전과목 만점을 한번 받았던 기억이 있다. (최초이자, 마지막이었다) 산수, 국어, 사회 기타 등등 다 100이라고 빨간색으로 씌어진 시험지를 하나씩 받을 때마다 점점 기분이 좋아져서, 방과 후에 시험지를 들고 집으로 뛰어가서 마구 자랑했던 그런 기억 말이다. 다 100점이니 이제 더 이상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즐거웠지만, 어머니는 계속 열심히 해서 앞으로도 100점을 받을 수 있어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도대체 공부는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거야?”

아버지께서 그 때인지, 언젠가 했던 말씀을 나는 이 궁금증에 대한 정답으로 머리 속에 가지고 있는데, 그 정답이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때, 공부 때문에 포기하지 않아도 될 만큼만 공부를 해라.”

스포츠 선수가 박사학위까지 딸 필요는 없고, 가수로 평생을 가고 싶은 사람이 논문을 쓸 필요도 없는 일이고 말이다. 그런데 사실 무서운 것은 무엇인가를 하게 되면 그 보다 더 높은 수준의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당연한 속성인지라, 언제나 공부에 목마르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고, 결론적으로 저 말대로 실천하려면 평생 공부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힘들때마다 책을 보고 이해하고 노력하는 것은 더 높은 지식의 성을 쌓기 위해서 평생을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잘은 안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