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의 쾌락

토익, 토플 MP3 들과 친해져볼려는 마음에 음악을 멀리하는 요즘이지만 다른 것 들은
버리고 참을 수 있어도 클래식 음악과는 멀어지기가 참 힘들다.

중학교 때인가 ‘클래식의 쾌락’이라는 클래식 음악의 입문서를 구입한 적이 있었는데
왠지 쾌락이라는 단어가 주는, 본능에 충실한 욕구 표현 같은 느낌이 들어서 왜 이런
단어를 썼을까 의아해 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 ‘쾌락’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지고
이런 저런 Classical Music(이 정확하다)을 듣다보니까 과연! ‘쾌락’이요 ‘환희’라는
표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보통 음악을 가장 많이 듣게 되는데, 이 때의 삶이 한가하기 때문이
기도 하고 감수성이 예민하여 조그만 외부 자극에도 강한 정서적인 쾌락을 얻기 때문이
기도 하고 또래 친구들로 인해서 다양한 음악을 추천받고 들어볼 기회가 있기 때문이기
도 한 것이다. 하지만 살펴보면 주로 듣는 음악의 스펙트럼이라고 해야하나, 어떤 장르
의 일관적인 묶음이 있는 것이고 다양하지만 그 내부에서의 움직임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는 음악에 포함된 어떤 리듬과 악기에 본인의 선호가 있기 마련이고 그를 쫓아가는
청취가 있기 때문일 것 같다. 헤비메탈과 재즈를 양쪽 다 심도있게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본 기억이 없다. (물론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명백하게 편중은 존재한다)

하지만 내 기억속의 나의 모습에는 다양한 음악들을 접해왔지만 항상 왼손에는 클래식을
기본으로 깔고 다른 음악에 비중을 높이는 식으로 음악을 들었던 것 같다. 물론 새로 취미
를 붙인 음악이 싫증나도 클래식을 선호하는 마음에는 영향이 없다. 이는 현대 음악의
뿌리가 클래식에서 파생되어 왔다는 점 때문에 부모와 자식은 양립할 수 있어도 자식과
자식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름의 생각이다.

흔히들 “나는 클래식 음악을 듣지 천박한 대중 음악은 안들어.” 라거나 “주제도 모르고
클래식 음악이라니 잘난척 하려는 것이 분명하군.” 이라던지. 어느쪽이던 클래식 음악이
주는 어떤 묵직하고 천박하지 않은 가치에는 동감을 하고 있으니 약간 비틀어서 그러한
특징은 단지 음악이 주는 느낌 정도로 치부해버리고 음악외의 요소를 보지 않으면 더
쉽게 클래식 음악에 다가서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나는 몇가지 이유에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데 우선 공부하면서 듣기에는 대중가요 보다
좋다. 가사. 즉 언어적인 표현이 들어가면 표현 방법이 훨씬 더 직접적이 된다. 즉 내가
듣는 것이 아니라 들리는 말이 되고 이는 정신 집중에 방해가 된다. (물론 공부할 때는
음악을 듣지 않는게 가장 좋지만) 그리고 대중 가요에는 음악이라고 보기 힘든 부분이
많다. “이번 곡의 컨셉은 가수의 이미지 변화를 위해서..” 이런식으로 시작한다면 이미
그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 보기 좋은 포장지 정도다.

(사실 대중 가요를 제외하고 나면 남는 것은 몇개 안된다. 우리나라 음악 시장의 70~80%
는 대중가요. 그리고 남은 부분을 뉴에이지, CCM, 인디음반, 클래식 등이 나눠먹고 있는데
클래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3%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공간감이랄까 인간미 같은 것을 찾는 잔재미랄까. 라이브 레코딩을 들어보면 연주자의
자잘한 실수. 숨소리. 심지어 피아니스트의 허밍까지. 음반마다 나타나는 이러한 잔재미라
의외로 재미를 준다.

또 같은 곡에 대해서 여러가지의 해석이 존재하는 것도 재미있다. 다른 많은 음악에서는
마스터 테이프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걸 변형시킬 경우 편곡이라는 개념이 들어가지만
클래식 음악에서는 작곡가의 악보가 절대적이고 그에따라 해석이라는 개념이 들어간다.
어떤 마음에 드는 곡을 발견하면 그 음악과 자신의 마음의 울림이 공명하는 탁월한
해석을 찾아내는 재미도 있다.

내가 50살이 되고 60살이 되었을 때 지금 들었던 클래식을 또 들을 수 있다면 꽤 행복할
것 같다. 지금 듣는 음악들에 일상 생활의 단상들을 연결 시켜놓고 먼 훗날에 같은 음악을
꺼내어 듣는다면 좋지 않을까. 마치 일상 생활에 책갈피를 끼워놓는 것 처럼 말이다.

어떤 다수의 ‘시퀀스’가 하나로 통합되어 치밀하게 맞아 들어가는 작곡자의 실력을
공학도의 측면에서 찾아 내는 것도 흥미롭다. 사실 이건 클래식 만의 특성은 아닌데
모든 클래식이 이렇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 하겠다. 질주하는 오케스트라지만 치밀하게
서로를 의식하면서 정확하게 의도된 타이밍을 찾아내는 실력을 최고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상 클래식에 관한 잡설

몰개성화

문화 인류학자들의 연구처럼 학문적인 바탕이라던가, 객관적인 시선에서의 의견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라는 것이 참 몰개성화 되어있는 것 만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사람 개개인의 창의성이 없고 뭔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닌 듯 보이는데
집단에서 벗어나서 나 혼자만의 개인 행동을 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크다고나 할까.

사회의 시스템이 그러한 혁명가(?)를 범죄자(?)와 동일시 하기 때문에 그러하지 않을까.

마치 우리집 수족관에 살았던 동남아시아산 수마트라 열대어를 보고 있으면 확실히 우르르
몰려다니는 습성은 사람에게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근래에 그러한 느낌을 더욱 받았다.
열대어는 다른 물고기의 공격이 두려운 것이고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부터 쏟아지는 시선이
두려운 것이리라.

몇가지 그런 생각들을 떠올리게 했던 것들이..

전 국민의 1/4 이상이 영화관에서 같은 영화를 본다는 사실 (물론 나도 그중 한명)
밥을 혼자 먹는 것에 대한 매우 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군대를 다녀와서 권위적인 인성으로 거듭나는 경우
네이버 포탈의 메인 페이지 1일 뷰 수
부동산 값의 폭등

같은 것 들이다.

이러한 집단화된 힘들이 옳은 방향을 향하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를
불러오기도 하지만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점점 더 패널티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

대규모의 노동력이나 정치적 운동. 혹은 군사력을 바탕으로한 비교 우위 같은 것 보다는
핵심적인 아이디어나 기술, 효율적인 시스템, 조화로움이 중요한 세상에서는 다른 생각을
하는 5명이 같은 생각을 하는 10명보다는 더 능률적이지 않겠는가?

마이너리티에 서는 것의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을 터득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물론 나 자신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