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웃기지 않잖아.

  역시. 시험 때만 되면 평소에는 거들떠도 안보던 책장 구석의 삐뚤어진 책마져 신경쓰여 공부가 안되는 요즘이다. 눈은 책을 보고 있겠지만, 머리속에서는 맹렬하게 주의를 기울일 다른 곳을 찾고 있으니 일단. 하고 싶은거 다~하고 지쳐 공부를 하도록 하자. – ㅅ-

요즘의 나의 고민은 바로 남을 웃기기.

  나는 무표정한 표정을 지으면서 가만히 듣고 있다가 툭 한마디로 찌르는 그래서 허파에 구멍을 뚫어버리는 촌철살인의 미학이야 말로 진정한 유머인으로써의 자질을 갖춘 고수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디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아마 우리나라의 심형래나 미국의 빌 코스비 등장 이전에는 그런식의 유머가 존재했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내가 시니컬과 유머러스를 반대로 이해하고 있던지.

  이러한 생각은 몇가지 다른 이유들과 더불어 나의 이 따분한 케릭터를 생성했는데 사실 얼마전까지 별 문제없다고 생각하고 살아 왔던 것이었다. “나는 남의 말을 듣는게 좋아” 라던가 “사람이 가벼워 보이면 안되지” 라던가. 머리 속에서 외부비판을 열심히 막아주는 국정변호사 같은 녀석들이 있어서 주위의 불평에도 아랑곳없이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이다. 두둥.

나름대로의 원칙을 지키는 일관된 행동도 최근 몇가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외적인 또 내부의 비판에 굴복해서 바꾸어야겠다고 결심을 했는데, 자세한 경유야 머리속에서 잊어버려도 상관없지만 그 후에 몇가지 행동 강령에 대해서 조언 받은 내용은 명심을 해야 하는 것.

우선 “말을 빠르고 크게 하세요” 되겠다.
둘째로 “많이 웃으세요”
마지막으로 “과장해서 말하기”

CD의 재생시간이 74분인 이유.

아주 일상적인 것에 왜? 라는 의문을 갖는 것.
명쾌한 이유를 들었을 때의 짜릿함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일조차 귀찮아 하는 바빠 죽겠다는 현대인들한테는 쉽지 않을 일 일수도 있다. 이러한 쾌감만을 주는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라는 책도 우리집 책장에 꽃혀있었다는 사실.

사실 제목과 같이 CD가 74분인 이유도 다른 것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알게되었는데.
그 이유인 즉슨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카라얀의 지휘로 디지털 녹음 된 재생시간이 74분이였기 때문이란다. 최고의 작곡가의 최고의 작품을 최고의(?) 지휘자가 역시 세계 최초로 디지털로 녹음했다는 우연의 우연의 우연이 결국 30년이 가까워 오도록 미디어 시장의 왕좌를 차지하는 CD의 재생시간을 결정했다니. -ㅅ- 이러한 세기의 발명품도 결국 상업적인 논리에 의해 결정되 버리는 엔지니어의 비애를 공감하기도 하는 씁쓸한 이야기 되겠다.

인류가 음악을 녹음하기 시작한 이래 최고의 연주라는 푸르트벵글러의 51년 바이로이트 실황 베토벤 교향곡 9번도 역시 74분이네. 확인해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