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와 특기

특기는 취미로 즐기기 때문에 잘하는 게 된 것이 특기 아닐런지..
취미는 특기이기 때문에 취미로 즐기는 것일 수도 있는건데..

테니스가 특기인 사람은 테니스가 취미인 것인가 아닌 것인가?
음악 감상이 취미인 사람은 음악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니 특기 아닌가?

도대체 구분이 뭐지?

내가 해서 내가 즐거우면 취미고,
내가 해서 남이 즐거우면 특긴가.

잘하기 때문에 즐기는 것인가 즐기기 때문에 잘하는 것인가.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문제 같은 알쏭달쏭함. -ㅅ-

그냥. 간만에 내 특기랑 취미를 ‘명사’로 말해야 할 상황이 발생해서 고민했었다는 거다.

이렇게 살아야겠다

  누구에게나 어떻게 살고 싶은 소망이 있고, 아주 작은 부분이나마 그 소망처럼 맞추어 가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스타벅스에 자주가는 사람이나, 브랜드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아니면 차를 사기 위해 밥을 굶는 사람이나. 혹은 이런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도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이나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나. 다들 자신이 원하는 삶의 단편이라도 누리면서 행복을 얻어 가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은 자신의 의식이 이끄는, 어떠한 삶을 위해 노력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경우인데. 간혹은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주위 상황이 아주 묘하게 조성되어 의식도 못한 사이에 ‘아, 이런 삶이 내가 원했던 것이구나’ 를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불행히도 아주 드물게.

  야구장에서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홈런 타구를 보면서 소설가가 되기를 결심했다는 누구 이야기도 그렇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결벽증 환자 잭 니콜슨도 그러하다.

물론 이러한 경험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경험하게되기 때문인지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데, 그만큼 영향도 더 크다.

나도 얼마전 오래간만에 이러한 경험을 했는데..

미국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창 밖은 어둠이 캄캄하고 구름만이 보이는, 틀어주는 아이스 에이지 2도 끝나고 모두들 잠들어 있는 시간이었다. 불편함에 몸을 뒤척이다가 그 끈적끈적함이 불쾌해서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자리에 앉아 담요를 뒤집어 쓰고 무료함에 헤드폰을 썼다. 홀스트의 행성 시리즈 중 ‘목성’. 그대로 나는 희미한 불빛만이 있는 우주로 날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아 이렇게 살아야 겠다.

생활의 발견으로 유명한 임어당은 자신은 양발로 대륙을 하나씩 밟고 있는 세계인이라는 말을 한적이 있었는데 (확실한 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만) 이제는 우주인도 가능한 세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